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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공동기획}
모퉁이 가게, 정한25시

중경삼림  date. 2018.11.07

안녕, 서울X예술 ④ 소설 / 회사원 00씨의 일일



[우주마가린]의 첫 번째 공동기획 ‘안녕, 서울X예술’은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대도시 서울의 삶과 문화, 예술에 대한 작은 목격담이자 우주마가린의 첫 항해일지이기도 하다.


연재순서

안녕, 서울X예술  ① 방담 _ 마음을 흔드는 도시, 삶을 헤아리는 예술은 가능한가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② <시티 컨퍼런스 : 예술과 도시> 리뷰 _ 급변하는 도시에서 예술의 역할, 도시와 예술의 관계 맺기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③ 마을과 문화, 예술 _ 성북동 삐딱 가족의 동네 예술 이야기  (2018.1월)

안녕, 서울X예술   ④ 소설 / 회사원 OO씨의 일일 _ 모퉁이 가게, 정한25시    (2018.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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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나치던 모퉁이 가게였다. 처음 동네로 이사 오던 날, 00씨는 지하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작은 가게가 있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가게는 ㄴ자로 길을 만났고, 좌판이 호기롭게 길을 차지하고 있었다. 좌판에는 주로 제철 과일과 채소가 진열되어 있었다. 봄이면 딸기가, 여름이 다가오면 살구, 자두, 복숭아, 앵두, 반으로 가른 수박이, 가을이면 사과, 배, 감이, 겨울이면 곶감 등이 올라왔다. 감흥 없이 그 길을 지나치던 00씨도 때 이른 과일에 아, 계절이 바뀌는구나 하고 얕은 감상에 젖을 수 있었다.


가게를 지키는 것은 두 양주였다. 동네 가게가 그렇듯 새벽부터 자정까지 영업을 했다. 아침저녁으로 가게를 돌보는 이는 주로 아저씨였다. 조금 벗어진 머리, 불거진 두 눈, 두툼한 입술, 조금 퉁명스러운 말투. 물건을 닦고 나르고 정리하는 것을 보면 꼼꼼해 뵈지만 곰살맞은 성격은 아닌 듯했다. 아주머니는 가게를 가끔 들르는 편이었다. 키가 조금 작고, 뽀글이 파마에 항상 앞치마를 매고 있었는데 가게 앞 파라솔에서 가맥하는 손님들에게 안주를 나르거나 동네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가끔 눈에 띄었다. 동네에서 오래 장사를 하신 분들의 태도가 묻어 있었다.


자주 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00씨가 가게에서 사는 품목은 정해져 있었다. 감성을 저격하는 제철 과일 몇 가지, 감기에 걸렸다 싶으면 으레 먹는 쌍화탕, 아주 가끔 맥주. 가장 큰 이유는 동네 가게의 가격 경쟁력 때문이겠으나 좁은 공간과 사람을 옥죄는 물건들의 진열상태도 한몫을 했다. 물건을 잡으려다 다른 물건을 건드려 흩뜨릴 것 같은 긴장감, 누군가의 시선을 온전히 받으며 본인도 모르겠는 뭔가를 고를 때의 곤혹스러움. 아, 00씨는 가게 주인과의 보이지 않는 밀당이 부담스러웠고, 동네의 다른 번듯한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 해가 남아있는 시각, 귀가하던 00씨가 오랜만에 가게에 들렀다. 출입문 옆에 장판을 깔아 만들어놓은, 마루라기에는 작고, 의자라기에는 큰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말을 붙여왔다. 어디 사느냐, 뭐 하고 사느냐, 지금은 뭐하고 들어가는 길이냐, 그리고 느닷없는 추가 질문, 술은 마시냐. 먼저 말을 잘 붙이지는 않아도 묻는 말에는 덥석 대답을 잘 하는 00씨, 이 동네 산다, 회사 다닌다, 친구 만나고 들어간다, 아, 가끔 마신다. 그럼 자기랑 한잔 하자는 아주머니의 제안에 얼결에 동의를 하고 가게의 조금 깊숙한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냉장고에서 소주를 하나 꺼내 종이컵에 콸콸 가득 채웠다. 아, 많은데… 싶었지만 조금만 주세요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기분.


역시나 이 동네 어딘가에 사시는 아주머니는 사는 이야기를 드문드문 쏟아냈고, 00씨는 어리벙벙한 상태로 맞장구 겸 고개를 주억거리며 종이컵의 소주를 조금씩 나눠마셨다. 다 큰 아이들 이야기가 쓸모없다고 하는 건지 자랑스럽다고 하는 건지 00씨는 종잡을 수 없었다. 술잔을 넘기라는 말에 부랴부랴 남은 잔을 벌컥 들이키고 다시 종이컵 가득 잔을 받았다. 다시 아주머니의 이야기, 00씨의 고갯짓, 조금씩 목을 넘기는 소주, 내어놓은 멸치에도 손이 한 번. 네 번째쯤 잔을 쥐고 있을 때 주인아저씨가 가게로 들어왔다. 이내 느껴지는 달갑지 않은 눈초리, 들리지 않는 혀 차는 소리. 아저씨가 들어온 문으로 아직 해가 창창했고 작은 의자에 붙인 00씨는 엉덩이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괜찮다는 말도 없이 당신 이야기를 계속했다. 00씨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소주를 조금 더 빨리 먹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이내 보이지 않았고, 병이 비어 후련해진 00씨의 바람과 달리 아주머니는 재빨리 두 번째 소주의 뚜껑을 땄다. 00씨의 마음은 호기심에서 난처함으로 바뀐 지 오래. 두 번째 병의 반이 비워지기 전 다시 등장한 아저씨는 대놓고 아주머니에게 지청구를 시작했다. 아주머니도 질세라 대거리가 시작됐다. 잠시 후 가게 안에는 00씨 혼자 덩그러니 소주 반병과 남았다. 가게는 점점 작아지고 00씨는 자기 몸이 열 배는 커지는 것 같았다. 아……. 술을 먹으면 얼굴이 빨개지는 00씨는 낮술을 하지 않는다. 어느 주말,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 작은 구멍가게에 무거운 공기가 쌓이고, 먼 데서 가게 주인들의 다툼 소리가 들려오고, 두 양주와 면식이랄 것도 없는 00씨 혼자 가게에 앉아 술잔을 들고 있다. 00씨는 아주머니에게 말할 틈을 겨우 찾아 일어나겠다 말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누군가의 눈초리가 느껴지는 건 얼굴이 빨개진 탓일 것이다. 00씨의 집 베란다에도 아직 햇빛이 남아있었다. 허탈과 어이없음의 중간께 감정을 술기운이 눌렀고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출근길, 00씨는 주인장들을 만나지 않길 바라며 가게 옆을 지나쳤다. 아저씨는 자기 일에 몰두한 듯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한동안 아주머니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날 이후 00씨는 뭐라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기대와 염치의 감정을 품고 가게를 기웃거렸지만, 아주머니를 보지 못해 가게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00씨가 가게 주인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할 기회는 다시 생기지 않았다. 마치 그 순간이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몇 년 후 어느 날 갑자기 모퉁이 가게가 헐렸다. 헐린 자리에는 카페가 들어섰다. 겨울이었다. 00씨는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데가 없었다. 그리고 한 달여쯤 후, 모퉁이 가게 두 양주가 떡볶이, 순대 등을 파는 트럭을 가게 바로 옆에 세웠다. 반가운 마음과 쓸쓸한 마음이 들어 붕어빵이니 순대를 몇 번 샀다. 00씨도, 주인들도 알은체를 하지 않았다. 한 번의 겨울을 트럭 위에서 보내고 두 양주는 사라졌다. 여전히 같은 동네에 사는 00씨는 예전보다 말끔해진 동네를 보며 가끔 두 사람과 그 순간을 생각했다. 좁은 가게를 가득 채운 물건들과 내려앉은 공기, 공기를 뚫고 나오는 두 사람의 목소리, 어둠이 뚜렷해지는 가게 깊숙한 공간, 술잔을 내려다보던 자신의 눈길, 뭔지 모를 쓸쓸함, 그리고 저간의 사정들을.


※ 이 기사는 서울연구원 ‘2017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사업’ 연구모임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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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경삼림

공허하고 공허하고 공허한 모순의 결정체, 사수자리. 기계적인 균형감을 본인의 특징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막에 갖다놔도 살아난다는 어느 스님의 사주풀이를 맹신하며 뭐라도/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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