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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공동기획}
긍정 또 긍정의 마인드로, 예술 하기 좋은 도시를 향해

날자몽키  date. 2018.11.07

안녕, 서울X예술 ⑥ 예술인과 도시



[우주마가린]의 첫 번째 공동기획 ‘안녕, 서울X예술’은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문화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과 예술을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살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대도시 서울의 삶과 문화, 예술에 대한 작은 목격담이자 우주마가린의 첫 항해일지이기도 하다.


연재순서

안녕, 서울X예술  ① 방담 _ 마음을 흔드는 도시, 삶을 헤아리는 예술은 가능한가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② <시티 컨퍼런스 : 예술과 도시> 리뷰 _ 급변하는 도시에서 예술의 역할, 도시와 예술의 관계 맺기  (2017.12월)

안녕, 서울X예술  ③ 마을과 문화, 예술 _ 성북동 삐딱 가족의 동네 예술 이야기  (2018.1월)

안녕, 서울X예술  ④ 소설 / 회사원 OO씨의 일일 _ 모퉁이 가게, 정한25시  (2018.1월)

안녕, 서울X예술  ⑤ 생활예술&생활문화 _ 삶과 예술, 문화 사이의 거리재기  (2018.2월)

안녕, 서울X예술   ⑥ 예술인과 도시 _ 긍정 또 긍정의 마인드로, 예술 하기 좋은 도시를 향해  (2018.2월)


2016년 서울시는 예술인의 삶과 창작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실행계획으로 ‘서울예술인플랜’을 발표했다. 당시 전국 13만 예술인 중 약 5만 명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만, 서울은 세계 40개 도시 중 예술인이 살기 좋은 도시 35위를 차지했다고 했다. 또 서울이 타 지역보다 살기 어려운 것은 생활비가 많이 들고 예술지원사업 공모 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서울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타 지역보다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도 내놓았다. 서울시는 2030년까지 예술인이 살기 좋은 도시 10위의 예술인 활동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서울예술인플랜’이 발표 된지 이제 일 년 반이 지났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이 시작했다는 정도지만,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의 제도적 문제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어쨌든 플랜이 가동하고 있다. 긍정 또 긍정의 마인드로 지방정부에서 중앙정부의 빈틈을 찾아 예술인과 함께 하겠다는 플랜의 시작을 일단 지켜보겠으나... 문득 내 주변의 예술가 친구들은 서울이 예술 하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예술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예술가에게 대면 혹은 서면의 방법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해봤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혹은 서울을 떠난 예술가들에게 서울은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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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서울을 ‘선택’했을까?


서울이 예술 하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느냐는 공통 질문에 네 명 중 세 명은 ‘아니오’였고, 나머지 한명도 ‘글쎄...’ 정도로 답했다. 네 명의 공통된 키워드를 추려보면 #경쟁 #너무_비싸 #서울이니까 #소_뒷걸음치다가_쥐를_잡을 수도_있지 정도로 꼽을 수 있겠다. 내용은 아마도 당신이 짐작하는 내용 그대로다.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경쟁도 심하고, 지원사업이 많다고 해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지원사업은 경쟁을 더욱 가속화 시킨다. 삶을 유지하는 비용도 많이 들고, 임대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또 인구수가 많으니 관객이 많을 것도 같지만 현실은 지인관객, 하지만 서울이 아닌 지역은 더, 더, 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도시로 모든 것이 집중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질 수 있는 안정감과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기회의 역설은 서울을 ‘예술 고시촌’으로 만들고 있다.


“일단 치열한 경쟁 때문에 너무 힘들다. 무수히 많은 단체들과 사람들이 거의 동일한 지원사업에 무조건적으로 지원하고 선정되기 위해서 지금 현재 주목받는 표현양식이나 주제를 살피게 된다. 때문에 다양한 색깔의 작업들은 사라지고 자기만의 세계를 펼치기도 전에 남 눈치를 보게 된다. 마음껏 펼쳐보지도 못했는데 기존의 터줏대감들로부터 가혹한 평가를 받고 좌절하기도 한다. 지원은 쪼잔 한데 평가는 세상에서 제일 프로페셔널 하다. 기회가 왔을 때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바로 다음 타자로 교체되는 가혹한 도시. 반면에 경쟁에서 살아남은 일부에게만 관심이 치우치기 때문에  마음대로 작업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제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서울은 타 지역에 비해 다양한 지원금 정책이 포진되어있다. 단계별로 작업자들을 육성(?)하려는 기운까지 느껴진다. 내 등급이 매겨지는 거다. 어느새 동료 작업자와 경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지원금 수혜, 제작극장 라인업, 연말 시상 등이 내 작업을 대변한다. 일반 관객이 아니라 내부 관계자들이 나를 평가하고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서울에서 작업자로 생존하려면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게 된다. 내 언어는 사라지고 내 작업도 더 이상 일반 관객을 위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서울은 (이미) 여기저기서 너무 많이 하고 있다. 구청에서도 하고, 시에서도 하고, 문화재단에서도 하고. 오만(군데) 채널에서 하고 있잖나. 지원금도 많고. 예술 향유 층은 적은데 예술가들만 너무 많다. 예술 발표는 너무 많은데, 그걸 볼 사람은 한정되어 있어서 대형 갤러리나 공연장에서 티켓 파워를 꽉 잡고 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목매달고, 거기서 갑질하고... 이게 악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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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씨어터 대학로2> 보도 사진 (출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를 잡아끄는 거대도시의 매력


가만, 그러고 보니 우리는 도시를 선택해서 살 수 있었던가.

예술가들은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예술 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떠난다는 것은 새로운 조건과 환경을 만나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묘한 박탈감을 주기도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도시를 떠나기 힘들다. 중소도시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이나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인 황량함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도시에 익숙한 사람은 도시의 소비와 욕망이 투영된 예술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을 수 있는 제도? 법? 사실 아무것도 막을 수 없잖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을 떠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서울이 요물인 거지. 이 요망한 것. (웃음) 결국 예술이라는 게 사람들 욕망이 투영되어야 하거든. 관객들의 욕망이 투영돼서 소비되지 않으면 사실 예술가는 동력을 잃게 된다. 그러니까 음악, 연극, 영화, 미술도 그렇고... 다양한 욕망이 얽혀서 엄청난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도시에서 가능한 작업들을 한다면, 결국 도시에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것도 그렇고 제일 큰 것은 불안함이다. 되게 허무한데 붙잡고 있는 거다.”


반면 서울을 떠나 다른 곳에서 예술을 하는 경우에는 창작의 소재를 지역에서 찾거나 지역에 기반 한 작업방식을 추구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하나는 나의 예술 활동에 더 이상 서울이 매력적이지 않은 경우다. 서울은 누군가와 오래 관계 맺기 힘든 도시이고 서울만의 지역성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서울의 분절된 삶은 예술을 통해 개인의 삶을 기록하고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든다. 예술이 기획의 도구가 되는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면 서울이 아닌 곳에서 하는 곳에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벽화로 유명해진 골목이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한다고 (주민들이) 그걸 다 지워버리잖나. 이런 상황은 밑바탕에 개인주의 의식이 짙게 깔려있다는 거다. 뭔가 문제의식을 캐내는 데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예술) 작업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지. 동네에서 오래 산 사람도 관심이 없고. 모든 관심의 토대가 마을공동체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축제나 반짝거리는 불꽃놀이 같은 작업을 원하는 경향이 많다. 그 작업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몰려서 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어떻게 보면 재래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같은 것만 원하는 거다.”


다른 하나는 지속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해 서울을 떠나기도 했지만 떠나지 않기도 한 경우다. 즉 서울과 지역에 활동기반을 걸치고 있는 것인데, 서울에서 했던 것과 같이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업을 했다가 대실패하고 지역의 환경과 니즈에 맞는 작업을 다시 처음부터 밟아가는 과정을 겪는다. 물론 이 과정은 예술가로 하여금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사명감이라기보다 서울에서는 서울의 방식으로 지역에서는 지역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것에 가깝다. 일종의 맞벌이다.


“관객이 내 작업을 봐준다는 것은 내 의미를 남들과 나누고 싶다는 순수하고 낭만적인 의미도 있지만, 작가에게는 경제적인 문제가 더 클 수 있다. 그런 것으로 따지면 서울은 작업하기에 다른 도시보다 낫지. 왜? 지원하는 것도 굉장히 많고, 작품이 팔리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그냥 어느 정도 이름값만 있으면 사업의 취지와 상관없이 밀기도 한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기회는 되게 많은 도시긴 하다.”


“지역은 관객이 더, 더, 더 없다. 그냥 없다. 시민들이 극장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고 극장에 들어오는 것 마저 어려워했다. 마치 금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1시간 넘는 공연이 아닌 15분 단막극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싶었다. 일상의 공간인 거리나 커피숍에서 시작해서 로비, 전시장 등을 지나 마지막에 극장을 경험하는 릴레이 공연 형태이다. 이 축제는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객들의 호응도 대단하다. 지역에서의 작업은 예술가로서의 작업 성취도나 작품의 완성도, 인정욕구보다는 관객을 어떻게 만나고 대화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이런 간극이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오래 걸리더라도 이 간극을 줄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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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거리예술축제 폐막 보도 사진 (출처 : 서울문화재단)


도시 속 고독한 예술이 아닌, 함께 하는 예술을 위한 도시


“워라밸이 이슈잖나. 워크와 라이프 사이에 밸런스를 찾아라. (…) 독립해서 살면서, 작업실을 꾸리면서, 작업비를 내면서, 전시도 해야 되는데, 되게 힘들더라. 그래서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을 기존 방식으로 하면 도저히 할 수 없으니까, 발표와 작업환경 같은 것을 최대한 (삶과 예술 사이에) 밸런스를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른 나라에서 연극을 본 경험이 파리 바스티유의 작은 극장에서 본 <햄릿>이었다. 공연도 좋았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너무 부러웠다. 연극(공연)을 즐기는 것이 생활의 한 부분인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그들과 고민하고 즐기며 작업하고 싶다.”


생활공간과 예술 활동 공간을 다르다 하더라도 여전히 서울은 예술 활동의 중심에 있고, 서울을 떠나는 예술가보다 서울로 모이는 예술가들이 많다. 예술가들이 바라는 예술 하기 좋은 도시는 함께 나누며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서울은 무한 경쟁 속에 새로움만 찾고 지역은 철옹성 같은 진입장벽으로 새로움을 거부한다. 나의 예술창작을 함께 나눌 동료가 있고, 관객과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도시, 무엇을 해야만 하는 곳이 아닌 무언가 해보고 싶은 곳, 예술가들이 말하는 예술 하기 좋은 도시는 이런 곳이다.



※ 이 기사는 서울연구원 ‘2017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사업’ 연구모임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글은 김정(연극 연출가), 박유미(미술 작가), 양재혁(미술 작가), 전윤환(연극 연출가)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 인터뷰 협력 _ 합정동 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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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몽키

줄여서 ‘날몽’. 탈춤을 추다가 지금은 연극을 만들고 있다. 사회와 사람은 어떻게 나아가는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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