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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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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누군가의 자전거}
어쩌다 보니 자가증식 (상)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18.11.07

성종은 형인 월산대군에게 정자를 선물하며 ‘망원정’(望遠亭 : 멀리 바라보다)이라 불렀다. ‘널리 바라보기 좋다’는 이름처럼 정자에 오르면 들판과 한강이 이어지는 경치를 저 멀리까지 볼 수 있었기에, 많은 선비들이 망원정을 사랑했다. 정자의 시야는 이제 강변북로에 막혀 ‘망원 望遠’이 어려워졌지만, 그 이름은 옆 동네 지명으로 남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곳 역시 ‘망원 望遠’이 불가능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망원동은 서쪽으로는 홍제천과 상암동, 북쪽으로는 성산동과 서교동, 동쪽으로는 합정동, 남쪽으로는 한강에 둘러싸인 채 낮게 고여있다. 주변 지역에 비해 저지대인 탓에 90년대까지만 해도 침수 피해가 잦았다. 다행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상암동 인근의 난지도와 주변 지역을 정비하기 시작하면서 망원동에도 빗물 펌프장과 유수지가 개설되어 더 이상 침수피해는 사라졌다. 그러나 ‘상습 침수지역’이라는 오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2011년 6월과 7월 사이의 어느 날, 나는 작업실을 구하기 위해 연락해둔 망원동 부동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의 인상이 뒤섞일 만큼, 한 달 넘게 계속된 부동산 투어 강행군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지만, 그날의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장대비에 어쩔 수 없이 신고 나온 장화의 묵직한 불편함과 택시기사님의 한마디 때문이다. “이렇게 비가 억수로 오면 망원동에 쥐섀끼들이 떠다닐꺼인데…….” 상습 침수지역의 여전한 이미지는 부동산 유목민의 절박한 마음을 주춤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날의 매물들은 둥둥 떠다니는 쥐새끼들의 환영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된 부동산 투어에서 낙점된 곳은 결국 망원동이었다. 망원동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철물점과 도료상은 물론이고, 목재상과 건재상, 유리집도 있었다. 도깨비시장에나 가야 볼 법한 만물상에 어설픈 골동품 가게까지 있었으니, 이런저런 재료와 작업 소재를 얻기에 좋았다. 마음의 고향, 을지로와 호미화방에 가기에도 용이했다. 물론 망원동을 선택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쥐새끼 따위보다는 비싼 월세를 백배는 더 무서워하는 가난뱅이라는 사실이었다. (육중완이 망원시장을 누비며 <나 혼자 산다>를 찍기 시작한 것이 그로부터 3년 후, 망리단길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게 된 것도 4, 5년 이후의 일이다. 지금은 골목마다 줄을 잇고 있는 커피숍도 당시에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적었다.)


망원동에 입성해 얼마간을 지내며 발견하게 된 특이점은 ‘자전거 타는 풍경’이었다. 나는 여태껏 서울 어디에서도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생활 밀착형’ 자전거 인구를 본 적이 없다. 망원동에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자전거를 탄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탄다. 우비를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탄다. 위험해 보이지만, 아직까지 넘어지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하고, 직장인들은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류장까지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래서 학교 앞에는 담장마다 자전거가 빼곡하고, 역이나 정류장 앞의 자전거 거치대에는 항상 자리가 없다. 특히 어머님들의 자전거 타기 내공은 실로 엄청나다. 망원시장과 월드컵시장을 잇는 횡단보도 앞에 10분만 서 있어도, 심상찮은 기운의 어머님 라이더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바구니에 과일과 채소 따위가 든 검은 비닐봉지를 가득, 짐받이에 복숭아나 포도 등의 과일 박스를 겹쳐 싣는 것은 기본이다. 핸들 양쪽에 우엉, 샐러리, 대파같이 키 큰 채소 봉지나 망에 든 양파, 콩 자루를 주렁주렁 매달아 다니기도 예사다.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을 앞뒤로 태우고도 무거운 장바구니를 핸들에 덜렁덜렁 매달아 다니기도 한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이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너무 신기해서 시장을 맴돌며 장 보는 자전거들만 구경하고 다니기도 했다. 망원동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자전거를 많이 타는 걸까?


의문은 망원동 생활 한 달 만에 싱겁게 풀렸다. 망원동에는 3~4층 규모의 노후한 다세대주택이 대부분이다. 아파트도 있긴 하지만, 단지를 이루지는 않는다. 골목은 대부분 일방통행이며 그 사이를 양방 2차선 도로가 잇는다. 당연히 골목 주차는 하늘의 별 따기다. 혹 남들이 댄다고 나도 따라 남의 집 앞에 물색없이 차를 댔다가는, 험한 소리 듣기 십상이다. 골목에는 골목의 법칙이 있는 법. 안타깝지만 세입자는 골목의 법칙에서 늘 배제된다. 큰소리 한번 못 내보고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하는 주차 메뚜기 신세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더 많은 시장통 골목과 거미줄같이 얽힌 일방통행 길을 구태여 차로 다니자면, 불편은 둘째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자전거는 필수품이었다. ‘나도 자전거를 한 대 갖다 놔야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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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는 학창시절 통학을 책임졌던 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바구니 달린 22인치 생활 자전거였다. 대학 간 이후에는 자전거 탈 일이 없었으니, 대략 10년 정도 방치되어 있었다. 비 맞고 바람맞으며 바래고 녹슬어버린 자전거는 누가 봐도 고물이었다. 그래도 자전거포에 끌고 가 바람 넣고 기름칠하고, 브레이크를 점검하니 그런대로 탈만 했다. 차 트렁크에 억지로 쑤셔 넣어 그 길로 망원동으로 싣고 왔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시작하자, 동네는 또 다른 풍경으로 가득했다. 걷거나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았던, 숨어있던 이야기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제야 망원동이 나를 일원으로 받아들여 준 기분이랄까. 날개를 달았다, 는 식상한 클리셰를 온몸으로 절감했다. 망원동과 오래된 자전거 한 대. 그것이 시작이었다. 요리조리 골목을 누비는 상쾌함에 취해, 미처 깨닫지 못했다. 끝을 알 수 없이 음험하고 끈적한 늪 속에, 한쪽 발이 빠져 버렸다는 사실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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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