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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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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누군가의 자전거}
어쩌다 보니 자가증식 (하)

꼬로꼬로라이더  date. 2018.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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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전거를 사면 좋을까요?”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고 즐겨 탄다는 소문이 지인들 사이에 퍼지면서 많이 받게 된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똑같은 질문을 되돌려준다.


“어떤 자전거를 사고 싶어요?”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태운다. 때문에 수많은 자전거 중에서 나에게 꼭 맞는 자전거를 고르기 위해서는 타는 사람의 근력과 지구력, 운동신경은 물론이고 자전거의 용도와 평균 이동거리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으로 파악해야 할 정보는 본인이 ‘어디’에서 자전거를 탈 것이며, 그곳의 길 상태가 어떤가에 대한 사항이다.


본가에서 망원동으로 22인치 생활 자전거를 데리고 온 이후, 나는 대부분의 이동을 자전거로 해결했다. 빨간색 자전거라 ‘빨강이’라는 성의 없는 이름도 붙여줬다. 그 무렵 나의 자전거 생활 반경은 광흥창 집과 작업실을 잇는 한강 자전거길, 그리고 망원동 안으로 한정되어 있었기에 빨강이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생활 자전거의 한계를 자각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있기가 답답했던 어느 날, 노트북을 챙겨 들고 빨강이에 올랐다. 학생 때부터 종종 다니던 이리 카페에 가서 노곤하게 담배나 피우며 한가로이 책이나 볼 요량이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날따라 한강 자전거길이 아니라, 망원역에서 합정, 상수역을 잇는 월드컵로 방면으로 페달을 밟았다. 문제는 그 길을 따라 상수까지 가려면 여지없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꾸역꾸역 페달을 밟아 봐도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급기야 자전거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의 나는 고작 망원역에서 합정역까지의 경사를 오르지 못해 ‘끌바’를 해야 할 만큼 형편없었다. (끌바란, 오르막에서 자전거를 끌고 걸어 올라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라이더들 사이에서는 굴욕적인 행위로 통한다.) 굴욕적인 합정역 끌바 사태의 주요인은 나의 어설픈 라이딩 습관과 흐물흐물한 허벅지 근육이었겠으나, 선무당은 본디 장비 탓부터 하고 보는 법. 당장에 빨강이의 스펙부터 따지고 들었다.


평지나 내리막길에서는 자전거가 사람을 태워주지만, 오르막에서는 사람이 자전거를 끌고 오른다. 때문에 타는 사람이나 자전거나 가볍고 힘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빨강이는 고작 기어 6단밖에 안 되는 주제에 무게는 무려 18kg이나 되는 ‘철’ 자전거다. 무겁고 힘은 없다. 자전거를 타는 자세도 문제였다. 자전거의 안장을 받치는 기둥인 싯포스트(seatpost)가 너무 짧아서 최대한 길게 뽑아도 다리를 쭉 펴고 탈 수가 없었다. 그만큼 페달에 체중을 실을 수 없으니 훨씬 힘이 들밖에.


8단 이상의 기어, 내 키에 맞는 싯포스트, 그리고 가벼울 것. 이상의 조건을 정하고 보니, 결론은 유사 MTB였다. 유사 MTB는 산악자전거인 MTB처럼 생겼지만, 산을 탈 수는 없다. MTB의 생명인 서스펜션, 즉 충격 완화 기능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심의 일반적인 오르막과 비포장도로에서 이용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몇 날 며칠을 검색하고 고민하고 기다리던 끝에 결정한 자전거는 다혼(DAHON)사에서 만든 접이식 유사 MTB, ‘매트릭스(matrix)’였다. 앞에 3단 X 뒤에 8단, 도합 24단의 기어를 장착하고 있으면서도 무게는 13kg밖에 안 됐다. 미니벨로(바퀴 20인치 이하의 작은 자전거)도 아니면서 차체를 접을 수 있다는 점 또한 흥미로웠다. 매트릭스는 검은 벨벳처럼 은은한 광택이 자르르 흐르는 차체가 매력적이라 ‘네로’라 부르기로 했다. 네로는 신세계였다. 네로와 함께라면 시속 20km 이상도 거뜬했다. 오래 타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았고, 페달에 충분히 무게를 실을 수 있으니 힘도 덜 들었다. 웬만한 경사 앞에서는 더 이상 쫄지 않게 되었다. 생애 최초의 장거리 라이딩을 함께 해준 것도 네로였다. 네로는 그만큼 고맙고 소중한 자전거였지만, 이제 막 불붙은 욕망은 슬슬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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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와  함께



“아, 자전거 있으면 좋겠다.” 그 무렵, 내가 어딜 가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 있는데 창 너머 자전거 타기 좋은 길이 보일 때,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역에서 목적지가 조금만 멀어도 자전거 생각이 났다. 꽉 막힌 강변북로 위에서 하릴없이 운전대만 붙잡고 있자면, 자전거로 여기서는 이만큼 걸릴 텐데, 저기서는 또 얼만큼 걸릴 텐데, 하며 애가 탔다. 작게 접어서 자동차 트렁크에 쏙 넣어가지고 다닐 수 있는 자전거, 어디든 좋은 길이 나오면 가볍게 내려 여유로운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자전거, 지하철에도 들고 탈 수 있는…… 그래, 접이식 미니벨로가 필요해! 이번에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봐 둔 모델이 있었다. 간결하고 미끈한 모양새가 세련된 다혼사의 뮤 우노(mu uno). 우노는 10kg도 안 될 정도로 가벼운데다 폴딩 방식도 쉽고 간편했다. 우노가 싱글 기어라는 사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건 우노와 나 사이를 갈라놓기에는 너무 하찮은 이유였다. 가벼우니까, 자전거 길로만 다니면 되니까, 그간 운동도 좀 했으니까, 싱글 기어여도 괜찮다고, 합리화했다. 합정역 끌바의 굴욕은 잊은 지 오래였다. 시장 볼 때는 빨강이, 한강 자전거길 라이딩은 네로, 지하철이나 차로 이동하며 중간중간 움직일 때는 우노. 이제 빈틈없는 자전거 생활 시스템이 완비되었다고 자부할 무렵이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찾아온 바람이 또다시 마음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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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여행.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다. 누구는 제주도 일주를 했다더라, 누구는 4대강 자전거 길로 어디어디를 종주했다더라, 온갖 자전거 여행기가 봄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여행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기어코 사진까지 들이밀면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목표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자전거’. 로드바이크였다. 로드바이크는 포장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도록 고안된 자전거다. 흔히들 ‘사이클’이라고 부르는 자전거가 여기에 속한다. 날렵하고 미끈한 디자인과 마찰을 최소화하는 얇은 타이어가 특징이다. 본질에 가장 충실한 자전거. 힘과 운동, 저항과 속도의 물리학이 집약된 자전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 인간의 동력으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자전거. 내 인생의 로드바이크 한 대쯤은 꼭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실현에 옮기기 시작했다. 작업실 메이트이자 취미 동반자, 휘그의 역할이 컸다. 그가 기증해준 프레임에 여기저기서 사기도 하고 얻기도 하여 모은 구동계를 장착해 원하는 스펙을 구현했다. 유튜브(Youtube)와 구글링으로 축적한 정보를 바탕으로 도색도 하고, 그 위에 직접 디자인한 로고와 이름을 붙여넣었다. 한 달 남짓 공들여 만든 인생 첫 커스텀 자전거, 꼬로꼬로(corrocorro)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슨 자전거가 그렇게 많이 필요해요?”


내가 복수의 자전거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질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또 같은 질문을 되돌려줄 수밖에 없다. “희한하게도 무슨 자전거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세상에 완벽한 자전거는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탈 것인지에 따라 그 자전거의 강점과 한계가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세상에 좋은 자전거는 무수하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탈 것인지를 충분히 고려한 자전거는 타는 사람에게 둘도 없는 자유를 안겨준다. 좋은 자전거만 타기에도 짧은 인생을 위해, 자전거는 오늘도 자가증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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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로꼬로라이더

커트 보니것을 흠모해 담배를 배웠지만 잇몸 염증에 굴복해 금연했다. 예술은 믿지 않는데 어쩌다보니 예술하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