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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찾는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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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길찾는 책읽기}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소설 같은 르포

잉여인간  date. 2018.11.07

『82년생 김지영』



『19호실로 가다』로 시작한 ‘길찾는 책읽기’ 세 번째 책으로 선택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적어도 필자에게는 셀 수 없는 인파로 가득한 거리에서 그냥 지나쳐도 무방할 그런 마주침이었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식들에 의하면, 지난해부터 출판계에 불어 닥친 페미니즘 열풍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는 페미니즘 담론 차원을 넘어 일상에서 치열한 불꽃을 일으키고 있으며, 특히 소설 분야에서 움직임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는 듯 보인다. 화제의 주인공 『82년생 김지영』 외에도 김숨의 『당신의 신』, 여러 작가들이 공저한 『현남 오빠에게』 등이 그에 해당한다. 소설 이외에도 페미니즘 관련 서적의 출간과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를 두고 출판계는 페미니즘 이슈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2016년 출간된 이래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며 장기 집권 중인 『82년생 김지영』이 유명 아이돌 여가수가 읽었다는 이유로 다시금 이슈화되어 베스트셀러 1위를 향해 역주행하고 있으며, 대학의 사회학 교재로 쓰이기도 했다는 최근의 기사는 베스트셀러 타이틀이 붙는 책에는 수상한 거부감으로 일관했던 필자도 김지영을 찾게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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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는 앉은 자리에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이 주는 미묘한 여운도 없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되었을 김지영이라는 평범한 여성의 일대기(대학을 졸업하고 홍보대행사에서 근무하다가 서른한 살에 결혼해 딸 하나를 낳아 키우는 과정)에 각종 통계 자료와 객관적 데이터가 뒷받침되어 힘을 실어준 한편의 르포를 보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82년생 김지영』의 사회적 여파가 커지면서, 한편에서 이 소설이 기존 순수문학의 미학적 기준을 충족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각종 통계와 자료를 한 인물의 생애에 그대로 대입해 ‘소설 형식을 빌린 르포르타주’라는 해석이다. 소설이라고 해서 전적으로 픽션이라는 가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작가의 경험과 실재가 작품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서사적 재현이라는 형식을 따르는 소설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말이지…. 과연 그래서일까…. 라는 반문이 무색해질 정도로 김지영은 여성들의 열렬한 공감과 지지를 받으며 페미니즘 확산에 불을 붙였고, 실제로 그 누적 판매 부수도 가히 놀랄 만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1982년 태어난 여성 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의 평범한 여성, 김지영의 생애주기를 통해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흔할법한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장르를 빌려서 말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김지영 돌풍의 핵심인 것이다. 소설 같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현실 같은 소설로 쓰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작가의 의도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필자만의 바람일지도….) 만약, 김지영이 픽션으로 일관한 소설 속 여성이었다면, 필자가 만난 19호실의 로라와 버지니아 울프 소설 속의 여성들처럼 말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수많은 여성들의 보편적 공감과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책을 덮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뇌리를 뚫고 번쩍이며 지나갔다.


소설이 예술적 위상을 의식하지 않고 그것이 일상이 되었을 때, 이는 곧 페미니즘이 이데올로기적 거대 담론을 의식하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일상이 되었을 때, 더 큰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선언적 운동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여성들의 고발을 넘어 이제 여성들의 사소할 법한 이야기들에 사회는 귀 기울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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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타칭 잉여인간, 자칭 공주(공부하는 주부). 주로 하는 일은 혼자 ‘읽고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며, 혼자이기를 즐긴다. 고고미술사학은 학부전공으로 끝, 예술학, 미학은 아직도 공부만 하고 있고, 현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호르몬 폭탄을 장착한 사춘기 아들과 수도권 도시 변두리에 살면서 잡독하며 잡글을 쓰고자 하지만, 잉여적 삶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