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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놀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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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위대한 놀이의 탄생}
미션과 탈출의 향연

김다빈 _ 자유기고가  date. 2018.11.07

집중탐구 1. 방탈출 콘텐츠


 

고대 잉카 제국의 보물을 찾으러 온 시간 여행자로, 살인 사건 현장을 찾은 유명 명탐정으로, 또는 수상한 회사의 기밀자료를 입수해야 하는 스파이로! 방탈출은 상상을 현실로 구현함과 동시에 현실을 가상세계로 만들어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제공한다. 60분의 긴박한 시간 동안 플레이어는 가상세계 속 인물이 되어 단서를 찾고, 각종 미션을 성공하여 단계별로 공간을 탈출해야 한다. 이제는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방탈출 카페, 많은 이들이 방탈출 콘텐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날로그 세대가 기억하는 탈출형 게임


우리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방탈출과 비슷한 양식의 탈출형 콘텐츠를 접하고 있었다. 1979년 출판된 에드워드 패커드(Edward Packard)의 소설 시리즈 ‘당신의 모험을 선택하세요(Choose Your Own Adventure)’는 이야기 전개 도중 독자들이 A 또는 B를 선택하여 모험 과정과 결말에 영향을 주는 최초 ‘게임북’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른 페이지로 이동하여 모험적인 사건들을 겪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등의 결말을 맞이한다. 종종 페이지를 이동하다 보면 무한 루프(...)에 빠지기도 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갈 수 없는 페이지가 종종 발견되어 독자들의 멘붕을 유발하기도 하였지만, 당시 꽤 많은 어린이들이 공책에 자신만의 게임북을 개발하고 플레이할 정도로 그 인기가 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게임은 바로 ‘미궁게임’이다. 인터넷 환경이 좋지 못했던 시절, 화려한 플래시나 복잡한 코딩 없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었던 미궁게임은 웹페이지를 이용한 퍼즐게임이다. 첫 페이지에서 수수께끼의 정답을 인터넷 주소창에 입력하면 다음 수수께끼가 있는 페이지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게임북의 온라인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주로 텍스트만 덩그러니 있는, 굉장히 단출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반전과 스릴 요소들이 있어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불필요한 이미지와 정보가 모두 생략되기에 오직 상상하는데 모든 세포를 동원하게 만든다.


한 시기를 강타한 이 위대한 게임들은 어느 순간 PC 게임 시장과 인터넷의 성장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다. 오래된 게임북은 절판된 경우가 많고, 수많은 미궁게임은 방치되다가 호스팅 문제, 또는 도메인 대여 업체 서비스 종료(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파란, 야후, 라이코스 등)로 인해 접속 불가능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아날로그 탈출형 게임. 게임북과 미궁게임에 열광했던 이라면, 분명 방탈출 카페의 등장이 반가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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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판 게임북 (출처 : https://goo.gl/3DKr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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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게임 ‘The Riddle Everlasting’ (출처 : https://goo.gl/FA9E8a)



온라인에서 현실 세계로 들어온 방탈출


오프라인 방탈출 카페는 게임 화면 속 세트를 실제 현실 공간으로 옮겨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탈출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구성된 신종 놀이문화 공간이다. 그 시작은 의외로 일본에서 배포되던 무료 신문지 SCRAP에서부터이다. 2007년 당시, SCRAP은 창간 3주년 기념 이벤트로 ‘리얼 탈출 게임(リアル脱出ゲーム)’을 진행하였고,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2008년 주식회사 SCRAP 설립, 상설형 리얼 탈출 공간을 만들었고, 세계 각국에 수수께끼 리얼 탈출 게임(リアル脱出ゲーム)을 기획·운영하며 이와 연계한 TV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방탈출 카페는 유럽, 미국, 중국 등을 거쳐 2014년경 한국으로 전파되었고, 유명 연예인들이 직접 방탈출을 체험하거나, 추리와 탈출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그 인기가 날로 커졌다. 《문제적 남자》, 《더 지니어스》와 같은 프로그램은 이 시대의 덕목 중 하나로 ‘뇌섹’을 부각시켰다. 《코드-비밀의 방》에서는 완벽한 밀실에 갇힌 출연자 10인이 각 방에 난무하는 각종 힌트를 수집하고, 문제를 풀어서 비밀번호를 추리해 서바이벌 형식으로 밀실을 탈출하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가 하면 《크라임씬》에서는 살인사건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직접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되어 서로의 공간을 탐색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단서를 통해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롤플레잉 형식의 신개념 추리 쇼를 선보였다.




《크라임씬3》 1회 ‘사상초유의 핏빛 대선’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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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비밀의 방》 4회 출연진들이 밀실에 갇혀 추리를 하고 있다. (출처 : https://goo.gl/XgCJzp)



하지만 영향을 받은 건 TV 매체뿐만이 아니다. 방탈출 카페 또한 예능적인 요소들이 더해져, 플레이 방식이 확장되고 있다. TV 예능프로그램 방식의 방탈출을 차용한 ‘퍼즐팩토리’는 탐정과 범인, 그리고 그 외에 플레이어들에게는 용의자 역할을 부여해서 롤플레잉 방식으로 게임을 즐기도록 한다. 만약 플레이어들이 범인을 검거할 경우 범인에게 투표한 플레이어가 승리하게 되고 범인 검거에 실패한다면 범인이 승리하게 된다. ‘480번가’는 플레이어들이 최고의 도둑이 되는 것을 목표(!!)로 방 안 곳곳의 자물쇠를 따고 금은보화를 훔쳐 나와야 한다. 값비싼 물건을 훔쳐 나올수록 등수가 높아지는 경쟁 게임이다.


몇몇 방탈출 카페는 방이 아닌 야외에서 미션을 수행하는 테마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방탈출 카페 체인점으로 유명한 ‘비트포비아’는 동대문점 ‘히든퀘스트 1 : 사라진 그녀’와 용산점 ‘히든퀘스트 2 : 자비원’ 테마를 운영하고 있다. 각 테마에서 플레이어들은 문자 메시지를 받게 되고, 문자에 담긴 미션을 시작으로 지하철역에서부터 그 일대를 이동하며,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홍대에 위치한 ‘호텔드코드’는 어느 날 연락이 끊긴 친구가 남긴 테이프를 통해 홍대 곳곳에 숨겨진 힌트들을 쫓아 문제가 생긴 친구를 도와주고, 범인을 쫓는 내용의 ‘리플레이’ 테마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은 《런닝맨》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플레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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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방탈출 카페 호텔드코드의 ‘리플레이’ 테마 (출처 : http://hoteldecode.com/room/room.php)


하나의 자원을 토대로 영화, 게임, 책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는 콘텐츠를 원소스 멀티유스(OSMU)라고 부른다. 탈출형 놀이는 OSMU로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결합하고, 확산되고 있다. 그 이유는 플레이어들이 현실 속에서 가상의 세계를 경험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깰 수 있기에 느껴지는 쾌감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층에서 경험한 탈출형 콘텐츠에 익숙해져서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현재 방탈출 카페는 스포츠 영역과 추후 소개하게 될 VR, 프로젝션 등의 기술과도 결합하여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술의 발전 과정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 탈출형 게임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변형이 가능할 것 같다. 이제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게 ‘공감’을 하게 되는 탈출형 게임의 미래가 궁금하다.

 프로필이미지

김다빈 _ 자유기고가

평범한, 보통의 무언가도 특별하다고 생각하기에, 곳곳에 묻어 있는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수집한다. 이토록 보통의 나도 유의미하다고 믿으며, 문화예술의 힘을 빌려 세상을 유랑한다.